국내 최고 권위의 건축상 가운데 하나인 '한국건축문화대상'의 올해 수상작 선정에서 '이변(異變)'이 일어났다고 한 건축계 인사가 최근 전했다. "이 상의 20여년 역사상 처음으로 펜션 건물이 뽑혀 국무총리상을 받게 됐다"는 것이다. 주최 측은 오는 23일 선정 결과를 공식 발표할 예정이지만 미리 수상자들에게 내정 사실을 통보하는 과정에서 이런 사실이 알려졌다고 한다.

'이변'의 주인공은 건축가 곽희수(45·이뎀건축 대표)씨가 지난해 설계해 완공한 충남 태안의 '모켄 펜션'이다. 곽씨는 강원도 정선 '42nd 루트하우스', 서울 청담동 '테티스 빌딩' 등으로 이미 한국건축문화대상을 받은 적이 있다. 곽씨는 '펜션 객실은 한 동 안에 모두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객실 3개동을 경사진 땅 433㎡(약 130평)에 걸쳐 반층씩 흩뿌려놓았다. 각종 방송 촬영지로 각광받을 만큼 독특한 디자인을 자랑한다. 건축가는 "객실을 뚝뚝 떨어트려 독립성을 유지하되, 거대한 미로 같은 경사길을 만들어 투숙객들이 놀이를 위한 기계적 장치로 삼을 수 있게 했다"고 밝혔다. 그는 "일반 펜션들은 주변의 수려한 자연을 '공짜 빵'처럼 누린다"며 "하지만 이 대지는 주위가 온통 논밭이라 경사지란 유일한 장점을 살려 건축물 자체에만 집중했다"고 했다.

'모켄 펜션'처럼 '삼각형 지붕에 흰 페인트칠을 한 한국판 유럽풍 전원주택'이라는 펜션 건물들에 대한 고정관념에 정면으로 맞선 공간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곽희수씨처럼 유명 건축가들이 설계를 맡아 서울 외곽과 지방 도시 등에 이름을 알리고 있는 펜션들이다. 하나같이 건축적 완성도가 높아 단순한 '휴양 공간'이 아닌 엄연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올해 초 완공된 경남 거제의 '어그리나드'(상업명 큐브 아일랜드)는 손가락처럼 튀어나온 객실이 사방으로 뻗은 외관이 눈에 띄는 건물. 연면적 198㎡(약 60평)로, 총 3개층 높이에 5개의 객실을 반층씩 올린 뒤 "복잡한 해안선을 가진 다도해(多島海)의 수려하고 아담한 풍광을 각각 다른 각도에서 즐길 수 있도록" 극적으로 설계됐다. 지난해 '문호리 주택'으로 한국건축가협회 선정 '2011 건축 베스트 7'에 선정된 건축가 정의엽(36·AND 대표)씨가 설계했다.

건축가 조병수(55)씨는 펜션과 문화 시설을 결합시킨 예술적 공간을 만들었다. 지난해 경기도 헤이리에 설계한 '헤이리극장'(상업명 요나루키). 헤이리를 찾는 관광객과 예술인들을 위해 전시장과 공연장, 숙박 시설을 지하 2층·지상 3층 한 공간에 모아놓은 건물로, 강원도 화천의 소설가 이외수씨 집, 경기도 수곡리 ㅁ자 주택 등 한국적 아름다움을 현대적으로 번안해온 건축가의 작업이다. 조씨는 "외부 욕조나 정원 등을 개인적 공간으로 소화하기 위해 금색 세라믹 패널을 사용해 '닫힌' 모습으로 완성했고, 패널 사이마다 좁은 틈을 내 바깥 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고 했다.

이 밖에 건축사사무소 무무의 경기도 양평 '비아지오', 건축가 김장섭씨가 설계한 인천 '매료펜션', 2008년 젊은 건축가상 수상자 신승수씨의 충남 서산 '수화림' 등도 '디자인 펜션'으로 주목받고 있다.

건축계에선 "2000년대 초 건축가 민규암씨의 럭셔리 펜션 '생각 속의 집'이 큰 성공을 거둔 뒤 별다른 작품이 나오지 않았는데, 최근엔 많은 건축가가 펜션이란 공간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곽희수씨는 "펜션은 고기도 편하게 구워 먹고 수준 이상의 안락함도 원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중적인 소비 심리에 적합한 숙박 공간"이라며 "과거에는 '유럽형' '아프리카형' 같은 이국적 펜션이 남발됐지만 이젠 '내가 평소에 꿈꿔왔던 도심 속 공간'이란 일상적인 의미로 옮겨왔다"고 했다.

건축가 정의엽씨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특별한 공간'에 대한 갈증이 가장 극적으로 나타나는 공간이 펜션"이라며 "건축주와 여행객 모두 '더 특별한 펜션'을 원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건축적으로 향유되고 차별화되는 펜션 작업이 더욱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박세미 기자 run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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