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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0년 고택 툇마루서 듣는 플룻 연주 “신비롭네요~”
글쓴이 : 웰빙하우징
날짜 : 12-05-19 09:49
조회 : 4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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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옥지킴이 킬번-작곡가 신지수 ‘한옥 공연’…한옥의 매력 ‘물씬’
 
 
[경남 함양] 지난 12일 오후, 지리산 자락 볕 좋은 동네가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 동네의 자랑거리인 500년 된 고택에서 현대음악 공연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함양군 지곡면 개평마을은 예스런 멋이 남아있는 소박한 동네이다. 조선시대 유림의 맥을 이어 온 선비고을답게 200~300년 된 한옥들이 즐비하다. 옹기종기 모인 집들을 구경하며 야트막한 돌담길을 따라 걷다가 높다란 솟을대문을 만났다.

정려패(旌閭牌·효자와 충신을 기리기 위해 나라에서 내린 상패)가 다섯 개나 걸려 있다. 이 집이 바로 이 날의 공연이 펼쳐진 정여창 선생의 고택(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제186호)이다.
 
언제나 열어둔다는 일두 정여창 선생의 500년 된 고택
한옥이 궁금한 사람들을 위해 언제나 열어둔다는 정여창 선생의 500년 된 고택

조선시대 유명하던 다섯 명의 유학자들(조선5현(朝鮮五賢)) 가운데 한 사람인 일두 정여창 선생(1450∼1504)의 집으로 들어가니 널따란 마당과 함께 사랑채의 누마루가 눈에 들어온다. 행랑채, 안채, 사랑채 등 양반 대가(大家)로서의 면모가 느껴진다.

이 날은 집안 대대로 빚어온 ‘솔송주’의 맥을 잇고 있는 안주인 박흥선(60)씨가 경남 무형 문화재로 지정된 것을 기념해 솔송주 만드는 법을 시연하고 방문객들이 시음하는 행사에 뒤이어 현대음악 공연이 이어졌다.

공연에 참여한 플롯, 바이올린, 장난감 피아노, 거문고 연주자들은 툇마루와 누마루, 마당의 작은 언덕에 각기 자리를 잡았다. 50분짜리 공연 ‘NOKHA(노카)’는 정해진 악보가 없다. 청중들이 공연장인 한옥에 들어가면 그들의 움직임에 따라 주변 음악이 바뀌게 된다.

집안 곳곳에 미리 설치해 둔 카메라로 청중들의 움직임을 포착해 실시간으로 연주자들 앞에 놓인 아이패드로 전송한다. 연주자들은 관객의 움직임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도록 프로그래밍 된 전자악보를 보며 연주하게 된다. 곡은 자유롭게 한옥을 거니는 청중들과의 상호작용에 의해 완성되는 셈이다.
 
연주자들은 청중들의 움직임에 따라 달라지는 악보를 보고 연주하게 된다
연주자들은 청중의 움직임에 따라 달라지는 악보를 보고 연주하게 된다.

이번 프로젝트는 지난해 11월, 런던에서 있었던 한국예술가협회 모임에서 만난 데이비드 킬번 씨와 작곡가 신지수(32) 씨와의 대화에서 탄생했다. 서울 가회동 한옥에서 20여 년째 거주하며 한옥 지킴이 역할을 자처한 킬번 씨는 음악과 공간의 관계를 콘셉으로 곡을 만들던 신 씨의 아이디어에 흥미를 느꼈다. 킬번 씨는 자신의 한옥에서 공연할 것을 제안했고 신 씨는 흔쾌히 수락했다.

“공간을 살리는 콘셉으로 작곡하던 제 아이디어가 한옥과 잘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한옥은 안과 바깥의 경계가 모호합니다. 오늘 공연도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어릴 적 방학이면 조부모님 댁의 한옥에서 생활하곤 했는데, 툇마루에 앉아 있던 느낌이 참 좋았어요. 공연에서도 그런 느낌을 반영해보고 싶었어요. 관객들도 공연을 보고 한옥에 대한 호감을 가지게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신 씨는 어린 시절 한옥에서 느꼈던 인상과 기억을 음악으로 표현해 자연의 소리, 그리고 그와 어우러지는 인간들의 소리를 묘사하는 곡을 만들었다. 이번 공연은 4월 21일 킬번 씨 부부의 가회동 한옥을 시작으로 11일 전주한옥생활체험관, 12일 함양의 고택으로 이어졌다.
 
작곡가 신지수(32)씨는 어린시절 한옥 툇마루에서 느꼈던 기분좋은 느낌을 청중들이 느꼈으면 했다.
작곡가 신지수(32)씨는 어린시절 한옥 툇마루에서 느꼈던 기분좋은 느낌을 청중들이 느꼈으면 했다.
 
처음 듣는 현대음악에 낯설어 하는 관객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자리를 쉽게 떠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한옥에서 음악을 듣게 되니 색다르네요. 고택과 클래식이 잘 어우러지는 느낌입니다.” 함양 주민 정병한, 김혜영 씨 부부는 ‘곡은 뭔지 잘 몰라도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기분’이라고 했다.

 “한옥을 무대로 해 시리즈로 기획된 음악발표회라는 것이 기존에 없던 거라 색다릅니다. 한옥에서 연주한다고 하니 사람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 같아요.”

김포근(32세·현대무용가)씨는 색다른 공연을 기록에 남기려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다음 번엔 자신도 ‘한옥에서 공연을 해보고 싶다’는 뜻도 내비쳤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걷거나 앉아서 공연을 감상했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걷거나 앉아서 공연을 감상했다.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의 집을 공연장으로 선뜻 내준 정여창 선생의 16대손 며느리이자 고택 안주인인 박흥선 씨도 이번 공연을 통해 한옥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이 크다.

“새소리 들리지 바람소리 들리지, 겨울엔 추운 대신 방은 따끈합니다. 또 여름이면 얼마나 시원한데요. 좋은 점이 참 많아요.”

‘해외 박람회에 가본 뒤, 세계 속에서 경쟁하려면 우리 것을 지켜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박 씨는 사람들이 한옥의 아름다움과 우리 것의 소중함을 알기 바라는 마음에서. 자신의 집 대문을 활짝 열어두고 있다.
 
집안의 전통이던 솔송주 제조로 경남 무형문화재가 된 집주인 박흥선 씨는 대를 이어 한옥에 거주하고 있다.
집안의 전통이던 솔송주 제조로 경남 무형문화재가 된 집주인 박흥선 씨는 대를 이어 한옥에 거주하고 있다.
 
숨죽이고 감상해야 하는 공연이 아니라 그런지 이 날 관객 중엔 어린 아이들도 있었다. 마당을 가로지르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마치 공연의 일부 같았다. 연주자였던 피아니스트 양재웅 씨(39) 역시 한옥의 매력에 푹 빠진 것 같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었는지 몰랐어요. 꼭 꿈을 꾼 것 같아요. 공연하면서 한옥이 참 아름답다는 걸 깨달았어요. 다음에 꼭 다시 올 예정입니다.” 솟을대문 안으로 들어선 관객들과 현대음악이 만들어 낸 퍼포먼스는 양 씨의 말처럼 꿈같이 느껴졌다.

“이 집 정말 아름답지 않나요?” 한옥 예찬가 킬번 씨 부부가 툇마루에 걸터앉은 모습이 편안해보였다. 영국 태생의 데이비드 킬번 씨는 20살 청년 시절부터 문화지킴이 활동을 해왔다. 경제 논리와 권력에 의해 역사적 가치가 있는 아름다운 건물이 허물어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던 그는 예술가 그룹에 속해 이를 지키고자 노력했다.

시인이기도 한 킬번 씨는 문학과 문화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한국인 최금옥 씨와 결혼한 킬번 씨는 아내의 문화가 궁금했다. 함께와 둘러 본 인사동과 주변의 한옥 집에 한눈에 반해 버렸다. 그리고는 덜컥 집을 샀다. 영화 ‘빈집’의 촬영 장소이기도 한 100년 된 한옥에서 킬번 씨 부부는 지금껏 살고 있다. “겨울이면 춥고 불편한 점이 많아요. 그래도 한옥에 사는 것을 포기할 수가 없어요. 좋은 점이 더 많거든요. 정말 아름답기도 하구요.”

한옥 지킴이 데이비드 킬번 씨 부부
영화 ‘빈집’의 촬영 장소이기도 한 100년 된 한옥에서 한옥 지킴이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데이비드 킬번 씨 부부

1988년, 킬번 씨 부부가 가회동 주민이 된 당시에는 한옥의 가치 하락으로 아무도 지키려는 이가 없었다. 무지, 무책임과 게으름으로 점차 파괴되어 갔다. 그때부터 킬번 씨 부부의 한옥 지킴이 활동은 시작됐다. 틈만 나면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해 한옥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려 애썼다. 한옥의 아름다움과 건축양식, 한옥에 살면서 좋은 점 등 한옥문화의 우수성에 관한 글을 써 전 세계의 매체에 기고하는 노력도 25년째 계속해오고 있다.

킬번 씨 부부는 점차 사라져가는 한옥에 대한 안타까움을 넘어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 우리 집 말고 제대로 된 한옥이 거의 없어요. 예전만 해도 우리 동네에 1,500여 채 쯤 한옥이 있었는데 지금은 900채 밖에 안 남았어요.”

한옥을 지키려는 킬번 씨 부부의 외로운 싸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북촌이 한옥마을로 지정된 이후에도 제대로 된 한옥은 점차 없어지고 난립개발로 콘크리트 양옥집과 가짜 한옥이 늘어나고 있다. 킬번 씨 부부는 이런 사실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전통에 대한 가치가 파괴된 것 같아요. 사람들이 그 가치를 몰라요. 너무 안타까워요.”

어울릴 것 같지 않던 현대음악과 고택의 만남은 자연스러웠다. 한옥에 대한 새로운 매력도 발견할 수 있었다. 한옥에서 느긋이 거닐다가, 앉았다가, 마음을 내려놓고 머물러보니 킬번 씨 부부가 한옥 지킴이로 나선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짐작 할 수 있었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보고 싶은 것은 겉만 번듯한 국적불명의 건물은 아닐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알고 지켜야 하지 않을까.

정책기자 이정훈(자유기고가)hunlee8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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