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문열의 마을에 숨어있는 것들
먼저, 퀴즈 하나.
이제 집을 하나 보실 겁니다. 이 집의 지붕이 다음 4가지 중 어떤 것인지 알아맞혀 보는 것입니다.
이 4가지 지붕은 우리나라 한옥의 기본 지붕입니다. 이 중에서도 맞배, 우진각, 팔작지붕 세가지가 거의 대부분입니다.
그러면 이제 퀴즈입니다. 아래 사진의 집은 저 중에서 어떤 지붕 집일까요?
<문제>
지붕 부분만 좀 더 확대해 보시겠습니다.
여러분이 고르신 정답은 무엇입니까?
‘팔작지붕’을 고르신 분들이 가장 많을 듯합니다.
하지만, 진짜 정답은, ‘맞배지붕’이었습니다.
‘아니 저게 왜 맞배지붕이야’, 하고 다시 위의 사진을 보시곤 ‘팔작지붕이 맞잖아’라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맞배지붕이 맞습니다. 그 이유는 저 집을 위에서 보면 알게 됩니다.
정확히 저 집의 윗모습은 아니지만 같은 형태의 집을 위에서 본 그림입니다.
자세히 보시면 맞배지붕이 사방으로 연결된 것입니다. 그래서 연결 부분이 마치 팔작지붕처럼 보였던 겁니다.
저 사진의 집은 약간 더 모양이 덧대어져 복잡해 보일 뿐, 그림 속 동그라미 친 집과 기본 구조가 같습니다.
그런데 저 마을 그림을 좀 더 보시죠. 저렇게 생긴 집들이 많습니다. 아주 확실한 ‘ㅁ자’ 집입니다.
이런 ㅁ자 집 중에서도 사진으로 보신 저 지붕 헷갈리게 생긴 집과 저 마을 집들을 ‘뜰집’이라고 부릅니다.
마당인 뜰을 중심으로 하는 ㅁ자 집이기 때문입니다. ㅁ자 모양 작은 마당이 있고, 마루도 꼭 그 마당만 합니다. 그리고 사방은 방으로 막혀있는 집이 ‘뜰집’입니다.
도면으로 보면 이렇게 방들이 구성됩니다.
이 도면은 청송에 있는 성천댁이란 고택 본채 평면도입니다.
가운데 정확하게 마당이 있고, 그 위에 마당만 한 대청이 있고, 그 가장자리를 방들이 감쌉니다. 전형적 뜰집입니다.
이 뜰집은 경북 지역에 발달한 집들입니다. 아주 철저하게 네모꼴로 만든 집입니다.
그러면 뜰집은 왜 이 지역에서 생겨난 것일까요?
그 이유는 뜰집이 발달한 안동, 봉화, 영양, 청송 등의 지역이 산간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뜰집은 산간 지역의 폐쇄적인 집과, 평야 지역의 개방적인 집의 사이에 있는 집입니다. 물론 건축 연구자들에게만 중요한 이야기니 우리는 신경 안 써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저 집들을 실제로 보면 아주 예쁘고 재미있다는 것이죠. 아주 단촐하고 모양이 반듯해 도시 한옥을 연상시키는 구조입니다. 저 모양대로 똑 떼어다가 아무데나 딱 지어도 될 것 같은 디자인입니다.
이 뜰집을 가장 잘 만나볼 수 있는 곳 하나가 저 문제에 나온 집이 있는 마을입니다. 그 마을 이름이 재밌습니다. ‘두들마을’.
이름이 왜 두들마을이냐, 설은 여러가지인데 ‘두드러진다’는 데서 나왔다는 이야기도 있고, ‘언덕 위의 마을’이란 이야기도 있습니다. 우리에겐 어원이 중요한 게 아니니 넘어갑시다.
저 그름으로 보시듯 두들마을은 오래된 한옥들, 특히 뜰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전통마을입니다.
마을은 크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유명한 인물들을 배출했습니다.
우선, 지금 이 두들마을 출신으로 가장 유명한 이는 소설가 이문열씨입니다.
윗그림 윗쪽에 있는 광산문학연구소가 이문열씨가 운영하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훨씬 더 유명하고 중요한 인물은 따로 있습니다. 조선 역사에서 길이 남을 중요한 책을 쓴 사람이 이 마을 출신입니다. 장계향(1598~1680)이란 분입니다. 장씨부인이란 속칭으로 더 많이 불립니다.
이분이 쓴 그 위대하다는 책이 <음식디미방>입니다.
<음식디미방>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음식조리법 책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음식을 다룬 최초의 우리 음식 조리서입니다. 더 나아가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여성이 쓴 음식조리서입니다. 이 책이 전해짐으로 해서 우리는 조선시대 사람들이 어떤 음식을 어떻게 해먹었는지 연구할 수가 있습니다. 장씨부인이 딸과 며느리에게 이 책을 써준 덕분입니다.
이 위대한 책의 지은이도 바로 이 두들마을 출신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은 집 구경이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이 마을에선 입구에 있는 이 집을 먼저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한옥에 대해 조금 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집 이름은 석계고택.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집이니 당연히 이 집부터 봐야 합니다.
집에 들어서면 먼저 사랑채가 나옵니다. 지금은 이 사랑채 앞에 문 건물을 따로 세웠지만 원래는 이 사랑채가 문이자 사랑채입니다. 저 문으로 들어가면 마당이 나옵니다.
들어가면 바로 안채입니다. 오른쪽은 시어머니방, 왼쪽은 며느리방, 가운데는 마루. 이상으로 끝.
안채만 끝이 아니라 이 집 전체도 이것으로 끝입니다. 정말 무지하게 간단한 집입니다.
눈여겨보면 특이한 게 하나 있기는 합니다. 마루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다른 동네 집 마루에는 없는 저 공간, 무엇일까요? 당연히 창고입니다. 그런데 저렇게 단단하게 막아놨습니다. 산짐승도 많은 동네고, 집도 작아 창고도 필요하고 해서 만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집이 너무나 간단히 맥이 빠질 정도인데, 그 간단함에 담긴 의미입니다. 이 집은 마당에서 보면 이렇습니다.
실은 마당을 가운데 두고 양쪽에 사실상 같은 구조의 쌍동이꼴인 사랑채와 안채가 평행으로 배치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형식의 집을 두 이(二)자 집이라고 합니다. 一자 모양 집 두채가 나란합니다. 위에서 보면 이렇습니다.
정말 단순하죠? 그러나 이런 단순한 원형이 남아있기 때문에 이 집은 중요합니다. 이 집이 진화해 마당 옆쪽으로도 건물을 돌려 이으면 바로 ㅁ자 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집은 뜰집의 조상이 되는 집인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건축 전공자한테나 중요할 테니 다시 넘어가고, 일단 이 석계고택에 대해 조금만 더 알아보겠습니다.
이 간단한 집을 세운 이는 이시명이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일찍이 생원에 올랐으나 입신양명의 뜻을 버리고 일생을 학문 연구에만 힘’썼던 사람으로, 1640년 이곳 두들마을로 들어와 저 집을 짓고 은거합니다. 저 두들마을은 이 이시명으로부터 비롯되어 지금까지 이어지는 마을입니다.
이시명은 재령 이씨였고, 두들마을도 재령 이씨 마을입니다.
▲ 사진=문화재청. 두 채가 나란히 있는 이 간단한 집이 ㅁ자 집으로 진화해갔다.
저 석계고택은 양반의 집이라지만 참으로 초라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저 집이 만들어낸 것은 실로 거대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음식디미방>이란 조선 문화의 길이 남을 책을 쓴 장씨 부인이 바로 이 집을 세우고 두들마을의 시조가 된 이시명의 부인이었습니다.
장씨부인은 신사임당에 비견되기도 합니다. 저 시골 촌구석에서 자식을 판서로 키워냈기 때문입니다만, 그보다는 부인 본인이 더 위대했다고 해야겠습니다. 저 허름하고 작고 소박한 집에서 그는 훌륭한 교육자이자 연구자이자 저술가로 우리 문화계에 보물을 남긴 것입니다.
이 <음식디미방>이 발견된 과정도 또한 극적입니다.
1960년 경북대 김사엽 교수가 저 장씨부인과 이시명의 후손 집 서가에서 어딘가 범상찮은 책이 하나 있기에 들여다본 것이 바로 <음식디미방>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놀라운 발견이었고, 조선 반가 음식 연구에 거의 혁명적인 전환점이 열립니다.
이 모든 것이, 그리고 뜰집이란 우리 전통의 특별한 집이 모두 저 간단하고 소박한 석계고택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그 이야기를 기억해두고 우리는 이제 마을을 돌아다녀 봅시다.
먼저 보실 집은 ‘유우당’이란 근사한 집입니다.
이 집도 뜰집입니다. 앞쪽 오른쪽 부분이 누마루로 멋을 냈을 뿐, ㅁ자 집 구조는 동일합니다. 고택의 포스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 집의 자랑거리는 이 부분입니다. 누마루의 기둥을 받치는 주춧돌이 좀 특이합니다.
엄청나게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주춧돌이 돌거북이 모양입니다. 다른 집엔 이런 것이 드무니 분명 자랑이 될 만 합니다. 수백년 된 거북이니까요.
뜰집은 안에 들어가 보면 네모꼴 구조가 완전히 포근하게, 또는 강하게 공간을 에워쌉니다. 유우당에 들어가 보시죠.
지금도 살림집으로 잘 쓰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마루는 높습니다.
한옥의 마루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거실 개념이 아니라 제사 공간의 개념이었고, 건축적으로도 실내가 아니라 외부 공간이었습니다. “한옥 마루는 너무 추워”라고 하시면, 그래서 마루에겐 섭섭한 이야깁니다.
뜰집은 입구에서 뒤쪽으로 단계 단계 건물 공간이 높아집니다. 위를 바라보면 한옥 기와지붕이 사방에 돌려지면서 가운데 네모꼴 하늘을 보는 액자를 만들어줍니다.
유우당 옆의 뜰집입니다. 기본 디자인은 대동소이합니다. 맨 먼저 문제풀이 보기로 나왔던 집과도 거의 동일합니다.
뜰집은 아주 간소하고, 집 구조가 단일체처럼 되어 있어 건축하는 이들에겐 무척 흥미로운 집입니다. 이 지역의 지리적 환경에 맞게 한옥이 변해간 것인데, 그래서 우리가 자주 접하는 평야지대 한옥들과는 다릅니다.
앞쪽 정면에서 보면 디자인이 아주 매력적이죠?
또다른 뜰집의 뒷모습도 보시죠. 앞쪽과 동일합니다. 한옥에선 참 드문 대칭형입니다.
양옆으로 눈썹지붕을 내서 그 느낌이 독특해 보입니다만, 실은 저런 지붕은 한옥에서 많이 합니다.
이 뜰집은 건축적으로 흥미로운 구석이 많습니다.
우선 공간은 무척 합리적입니다. 알뜰살뜰 작은 구조에 최대한 많은 것을 집어넣습니다.
대신 무척 폐쇄적입니다. 한옥의 맛 중 하나가 외부와 내부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인데, 저 뜰집은 그러진 못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완전한 실내 공간에 콕 박히게 되고, 문 열고 나가면 바로 자연이 되는 그런 집입니다.
또 다른 뜰집입니다. 대청에서 문쪽을 보면 이렇게 지붕이 서서히 낮아지면서 네모꼴을 이룹니다.
두들마을은 이런 뜰집들도 구경하고, 문학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이문열씨의 문학 공간도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지자체에서 이 마을을 꾸민다고 오히려 정취를 망가뜨리는 장식을 많이 덧댄 점입니다. 저렇게 멋진 뜰집들이 잘 남아있는데, 마을 어귀에는 한옥 비례도 안 맞고 꾸밈새도 너무나 이상한 기념관 같은 것들을 짓고 있었고, 마을 바닥 포장 등은 황톳빛 한옥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어서 실로 짜증날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저 중요한 뜰집들이 잘 남아 있기에 두들마을은 소중하고, 또 다른 ‘젊은 마을’에선 볼 수 없는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곳입니다.
정말 뜰집에 관심이 있다면(그런 분이 과연 얼마나 되실지 모르겠으나) 뜰집 형태로 가장 크고 웅장한, 문화재 가옥 ‘사월종택’도 들러보시면 좋겠습니다. 역시 두들마을이 있는 영양에 있습니다.
보기만 해도 근사하죠? ㅁ자 집 형태는 그대로인데 그 규모가 훨씬 커졌습니다.
이 집의 특이사항은 ‘정남향’이란 점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남향에 열광하는데 정남향인 게 뭐가 특이하냐 싶으실 수도 있겠지만, 의외로 고택들을 보면 정남향 집은 드뭅니다. 남쪽을 바라보되 정남향은 아니고 살짝 틀어져 있는 집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특히 강원도나 경상도 집들은 정남향이 되기가 어렵습니다. 이 지역을 관통하는 백두대간은 남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배산임수로 집을 지으면 서향이나 동향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안동 일대는 태백산맥이 소백산으로 갈라지면서 동서로 이어지는 부분이 있어 남향으로 집을 지을 수 있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이야기가 길어지니까 일단 패스.
이 멋진 집에서도 자랑거리는 저 누마루입니다. 사랑채를 누각 형태로 만들어 바깥을 보기 좋게 만든 것이죠.
저 누마루 사랑채는 누구나의 로망을 자극하기 딱 좋습니다. 보기만 해도 멋지니까요.
그럼 저 누마루 안은 얼마나 또 좋을지 한번 들어가 보실까요?
하도 오래된 집이라 관리를 잘했는데도 이 누마루 안은 좀 썰렁한 편입니다.
그리고 바닥에 웬 하얀 가루 같은 것들이 좀 보이시죠? 뭘까요?
박쥐 똥입니다. 로망과 현실의 차이죠.
그러나 창을 열면 역시 기가 막힙니다. 한옥의 매력은 이런 개방되는 공간에서 역시 잘 드러납니다.
누마루 바깥을 거닐며 기둥을 만져봅니다. 정말 오래된 나무만이 만들어내는 빛깔과 촉감이 일품입니다.
옆으로는 이 집의 사당이 보입니다. 이 집의 품격을 대변합니다. 저렇게 잘 꾸민 사당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부잣집들이라도 집 안에 작은 건물 하나 따로 마련하는 정도인데, 이 집 사당은 따로 담도 두르고 아주 근사합니다.
뜰집 구경에 나서 두들마을 돌아보고 이 사월종택까지 돌아보고 나오는 길, 종택 앞 집 벽이 눈을 사로잡습니다.
문화재는커녕 허름하기 짝이 없는데 흙과 돌로 그림처럼 만들어낸 벽이 실로 아름답습니다. 한참을 쳐다봤습니다.
뜰집도 좋았고, 사월종택도 근사했지만 이 벽 하나만으로도 눈이 행복했습니다. 오래된 것은 다 아름다운 법임을 실감하게 하는 벽이었습니다. 그리고 벽 하나를 꾸미기 위해 돌들을 고르고, 힘들여 나르고, 벽을 세우며 정성껏 모양냈을 그 마음도 아름다웠습니다. 게다가 시간이 더해지니, 한폭의 그림이 따로 없습니다.
건축가 없는 건축, 오래된 건축은 늘 멋집니다. 영양에서 가장 기억에 남게 될 집은 오히려 이 집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구본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