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삼청동 국제갤러리 1관을 왼쪽에 끼고 좁은 오솔길을 30m쯤 오르다 보면 이색적인 건물이 하나 눈에 들어온다. 울퉁불퉁한 회색 노출 콘크리트 외벽을 5만1000여개의 스테인리스 스틸 메시(그물코)가 감싸 안고 있는 전위적(前衛的) 형상의 갤러리. 희뿌연 '안개'에 둘러싸인 한 점의 설치작품 같은 인상을 주는 이 건물은 4월 초 개관한 국제갤러리 제3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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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조선시대 풍경화와 도자기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불분명한, 영원한 '안개'를 만들어 삼청동의 분위기와 조화를 이룰 수 있게 했다." 설계자인 미국 건축가 그룹 SO-IL(소일)의 대표 건축가 플로리안 아이덴버그(Idenburg·37·
사진)는 최근 본지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이덴버그는 미국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 중인
네덜란드 출신 건축가로 뉴욕 뉴 뮤지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파크 파빌리온 등의 작품이 있다. 이번에 설계한 국제갤러리는 지난해 5월 미국건축가협회가 주는 뉴욕 디자인 어워드(New York Design Award)에서 상을 받았고, 최근 세계적인 건축·디자인 잡지 '월페이퍼'가 "소일의 최근 작업 중 가장 칭찬받을 만하다"는 호평과 함께 소개하기도 했다.
미국 건축가 그룹 SO-IL이 설계한 서울 삼청동 국제갤러리 제3관 앞면. 사진 왼쪽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한 외관에는 환풍구와 엘리베이터 공간이 요철처럼 튀어나와 있다. 그 위를 5만1000여개의 스테인리스 스틸 그물코가 감싸 안아 마치 안개에 싸인 한 점의 설치 작품을 연상시킨다. /사진가 김용관
국제갤러리 3관은 지상 1층·지하 1층짜리 건물이지만 겉에서는 몇 층짜리 건물인지, 전체 외관은 어떻게 생겼는지 한눈에 알 수가 없다. 은빛 그물코들, 즉 '안개' 때문이다. 건물에 바짝 다가가야 '안개'속 불룩 튀어나온 콘크리트 요철이 엘리베이터와 환풍기,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감싸는 장치임을 알 수 있다.
아이덴버그는 "'안개'는 갤러리가 삼청동의 주변 한옥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기 위해 선택한 해법으로 한국 예술작품에서 차용한 이미지"라고 했다. "한국 전통 도자기는 모서리가 딱딱 떨어지지 않는 아주 부드러운 형태다. 이 불완전함이 오히려 인간적인 느낌을 줬다. 예전에 본 조선시대 정선의 회화 '장안연우(長安烟雨·1741년)'에서도 영감을 받았다. 그림 속 모든 요소, 즉 날씨와 풍경·대상이 전부 안개에 싸인 듯 합쳐지고 뭉개져 있었다."
- (왼쪽)갤러리의 단순한 내부 전경, 갤러리의 뒷면. 오른쪽에 기왓장을 박아넣은 전통식 담장이 보인다.
건물 주변에는 기왓장 단면이 박힌 높이 1m 남짓한 돌담을 둘러쳤다. 건축가는 "건물을 신축할 때 전통 담장으로 주변과의 경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한국 건축법 때문에 '모던함과 전통 간의 접점'을 이런 식으로 풀었다"고 했다. 내부는 지극히 단순하다. "대지면적이 좁지만(800㎡·240여평) '작품들을 효과적으로 설치할 수 있게 건물을 높게 설계해 달라'는 건축주 요구에 따라 천장고만 6.1m로 높였다"고 한다. 천장에는 양쪽 가장자리에 불투명 유리로 만든 천창(天窓)을 달아 빛의 양을 조절토록 했다. 이 천창을 여는 정도에 따라 갤러리는 때론 암실(暗室)이, 때론 화사한 전시장이 되기도 한다.
아이덴버그는 "국제적으로 큰 갤러리일수록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간을 개방하고 양보한다. 한국에도 이런 공간이 많아졌으면 한다"고 했다. "그런데 한국에 가 보니 거리를 전부 자동차들이 점령하고 있는 듯했어요. 더 사회적이고 개방된, 친근하고 편안한 공간을 만드는 데 많은 한국인들이 고민했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