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80년대 대도시가 급격히 형성되면서 불도저식으로 지어진 정형화된 '집장사 주택'. 삼각형 지붕에 콘크리트 구조, 붉은 벽돌 타일로 만들어진 이 주택은 어느덧 도심의 고민거리가 되었다. 최첨단 건물에 가려져 대다수 서민들이 사는 이 주택은 땜질식 보수 공사로 지탱하며 '도심 슬럼화'를 부추기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 오래된 주택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 중인 건축가 이승헌(44) 동명대 교수와 인테리어 디자이너 이종민(35)씨는 지난해 초 우연한 자리에서 이런 대화를 나눴다. "돈이 많건 적건, 이제 사람들의 주거 욕구는 상향 평준화되지 않았나? 그렇다면 저 오래된 주택엔 누가 들어가 살 건가?" 두 사람이 내린 결론은 이랬다. "도심(부산 기준) 아파트 전세가격으로 나만의 단독주택을 갖게 하자. 새로 짓는 게 아니라, 작은 비내력벽(건물 하중을 받지 않는 벽)은 철거하고, 기본 구조 수리, 디자인적 요소로 낡은 집을 완전히 새집처럼 바꿔보자."

최근 부산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노후주택 개조 연작(連作) 프로젝트 '리노하우스'(리노베이션+하우스)의 출발이다. 최근 서울에서 만난 두 사람은 "사회적으로는 노후 주택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도시 재생(再生)을, 개인적으로는 저렴한 비용으로 수준 높은 주거 환경을 원하는 서민 욕구를 충족시키는 프로젝트"라고 했다.

리노하우스의 핵심은 '디자인을 통한 주택 개조'. 지난해 8월 부산 남산동 주택을 시작으로 오는 9월 완공 예정인 청학동 주택까지 1년여 동안 남산동·수정동·서대신동·동대신동·하단동 등 총 7개 지역 8채의 노후 주택을 환골탈태시켰다. 이승헌씨는 "건축주의 라이프스타일과 가족 구성을 고려해 비내력벽과 계단실을 조정하고 저렴한 재료로 집안 곳곳에 디자인적 요소를 넣는 데 집중했다"며 "리모델링처럼 지붕·기둥·보 등 큰 구조를 변경한 게 아니기 때문에 공사비도 평당 100만~150만원, 공사 기간은 한두 달 정도면 충분했다"고 했다.

연면적 66㎡(20여평)~230㎡(70여평)에 불과한 노후 주택의 주요 개조 대상은 거실과 방의 구성. 이종민씨는 "1970년대 주택에서 방으로 가는 좁은 통로에 불과했던 거실을 가족들이 모여 앉아 있을 수 있는 명실상부한 거실로 확대하고, 방 중 일부는 요즘 가장 중시하는 주방과 화장실로 대체했다"고 했다.

'게임방' '놀이방' 등 테마 공간을 원하는 젊은 건축주들의 바람대로 공간을 재구성하되, 디자인적인 요소를 넣었다고 한다. 육중한 벽이나 문 대신 가운데 동그란 구멍이 뚫린 블록이나 유리창을 사용해 개방감을 주었다. 삐걱대는 창문엔 모던한 폴딩도어(접히는 창문)를 달고, 죽은 공간이었던 다락방을 아이들 놀이방으로 개조하기도 했다. 이종민씨는 "주택 외부에 있던 화장실을 실내에 들이고 그 자리에는 데크와 잔디로 꾸며 전원주택 같은 분위기를 살렸다"고 했다.

"도시의 낡은 주택을 전부 헐어버리는 게 능사가 아닙니다. 철거 비용이나 환경 문제까지 발생하죠. 적은 비용으로도 얼마든지 아름다운 주거 공간을 만들 수 있어요."

 

박세미 기자